원래는 야간 편의점에서 일했다. 새벽에 취객 상대하고 유통기한 찍힌 물건 빼다 보면 아침에 집에 와서 반나절을 기절하듯 잤다. 그러다 집 근처 개인 카페에서 주말 알바를 구한다길래 별생각 없이 지원했고, 그 길로 카운터를 옮겼다. 카페는 편하다는 말만 믿고 들어갔는데, 막상 8개월 넘게 해보니 편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더라.
오늘은 그 8개월을 한 번에 적어본다. 시급이나 근무표 같은 숫자보다, 카운터 안쪽에서 실제로 뭘 겪는지가 궁금한 사람한테 도움이 될 것 같다.

첫 교육날, 생각보다 외울 게 많았다
카페 교육 첫날은 아직도 기억난다. 편의점은 바코드 찍고 봉투 담으면 끝이라 하루면 감을 잡았는데, 카페는 달랐다.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 우유 스팀 온도, 시럽 펌프 횟수를 메뉴마다 외워야 했다. 아메리카노는 샷 두 개에 물 얼마, 라떼는 스팀 우유 얼마, 이런 걸 손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했다.
우유 스팀이 제일 어려웠다. 처음엔 거품이 너무 거칠어서 라떼 위에 그림은커녕 하얀 덩어리만 둥둥 떴다. 사흘쯤 지나니 손목 스냅으로 결이 고운 거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때 사장이 이제 좀 카페 사람 같다고 했는데, 별거 아닌 그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첫 주에는 주문이 밀릴 때마다 손이 얼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에 라떼 하나만 겹쳐도 순서가 헷갈려서 어느 컵이 뭔지 놓쳤다. 그럴 때 컵에 매직으로 메뉴 약자를 적어두는 요령을 사장이 알려줬다. 그 뒤로는 컵만 봐도 뭘 만들지 바로 손이 갔다. 편의점 카운터에서 배운 속도가 있어서 계산이랑 응대는 금방 익었는데, 음료 파트만큼은 온전히 새로 배워야 했다.
카페 알바의 진짜 장점은 음료였다
솔직히 제일 좋았던 건 음료다. 평소에 카페 가면 메뉴판만 보고 상상하던 조합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민트랑 요거트 섞은 스무디, 연유 넣은 카푸치노, 아카시아꿀 카푸치노, 페퍼민트 카푸치노 같은 걸 근무 중에 하나씩 만들어 봤다. 커피는 사실상 무제한이라 하루에 서너 잔은 그냥 마셨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여덟 시간 서서 일할 때는 꽤 큰 낙이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끼니 때우던 걸 생각하면, 내가 만든 음료 한 잔 들고 창밖 보는 그 3분이 하루를 버티게 했다. 손님 뜸한 오후 3시쯤 새 레시피를 실험하는 게 은근한 재미였다.
시즌 메뉴가 바뀔 때마다 사장이 재료를 몇 개 더 들여놨는데, 남는 시럽으로 나만의 조합을 만들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자몽 에이드에 페퍼민트를 살짝 넣거나, 연유 라떼에 계피를 뿌려보는 식이었다. 손님이 그거 뭐냐고 물어서 즉석에서 메뉴에 올라간 것도 있다. 편의점 야간 때는 상상도 못 할 소소한 재미였다.
일 자체도 몸이 부서지는 종류는 아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단기 알바를 잠깐 해본 적 있는데, 거기서는 무거운 박스를 쉬지 않고 올리다 이틀을 앓아누웠다. 카페는 그런 중량물이 없다. 공장 생산직처럼 라인에 묶여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것도 아니라서, 손님 없을 때는 잠깐 숨 돌릴 틈이 있었다. 그 차이 하나만으로도 나는 카페가 훨씬 나았다.
카페 오기 전엔 이것저것 많이 건드려 봤다. 백화점 식당 주방보조를 하루 해봤는데 6시간이라던 근무가 11시간이 됐고, 설거지랑 국 끓이기만 하다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그날로 그만뒀다. 그때 현금 13만 원을 받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던 걸 생각하면, 카페는 정말 사람이 할 만한 일이었다. 서서 하는 건 똑같아도 결이 완전히 달랐다.
겉보기랑 다르게 손이 많이 갔다
그런데 이미지만 좋아 보이지 마냥 편한 알바는 아니었다. 처음 들어간 매장은 한가했다. 공부도 하고 핸드폰도 만지면서 널널하게 일했다. 문제는 옆 카페들이 줄줄이 망하면서 시작됐다.
우리 매장으로 손님이 몰리더니 매출이 석 달 만에 세 배 넘게 뛰었다. 매출이 오르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 텐데, 나는 1인 풀타임이었다. 주문 받고 음료 뽑고 계산하고 설거지하고 매장 닦는 걸 혼자 다 했다. 핸드폰은커녕 물 마실 틈도 없어졌다. 주말에는 16시간을 붙어 있었는데, 그 시간 내내 앉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발이 제일 고생했다.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저녁이 되면 종아리가 딴딴하게 뭉쳤고, 집에 오면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손목도 시큰했다. 스팀 피처를 하루에 수십 번 돌리고 원두 통을 들었다 놨다 하니 오른쪽 손목이 항상 뻐근했다.
고깃집 홀서빙처럼 넓은 홀을 뛰어다니는 건 아니지만, 카페는 카페대로 멀티가 안 되면 못 버틴다. 에스프레소 내리면서 다음 주문 외우고, 진동벨 대신 이름 부르고, 그 와중에 포스기 두드리는 걸 동시에 해야 한다. 멀티태스킹 안 되는 사람은 두 시간이면 정신이 나간다. 나도 주문 세 개가 겹치는 피크 타임에는 손이 떨렸다.
카운터 안에서 본 인간군상
여기가 제일 하고 싶은 얘기다. 카페 카운터에 서 있으면 별의별 사람이 다 온다. 진상이라기보다 그냥 신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카드를 IC칩으로 못 읽어서 마그네틱으로 긁으려는데, 마그네틱 오류가 나면 거기서부터 아무것도 못 하고 굳어버리는 손님. 주문한 걸 까먹고 이거 안 시켰다고 우기는 손님은 진짜 많았다. 영수증을 보여드리면 그제야 아 맞다 하신다.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서 여럿이 나눠 마시고, 다 먹었으니 리필해 달라는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들어가는 재료를 저울로 일일이 계량한 걸 눈앞에서 보여줘야 믿는 분도 있었다. 그렇게 확인시켜 드려도 한 모금 마시고 이상하다며 다음 날 새 거 달라고 오는 게 반복됐다. 격일로 찾아와 종이박스 왜 이렇게 적게 나왔냐고 큰소리치는 폐지 할머니도 계셨는데, 오실 때쯤 가위랑 커터칼, 메모지, 볼펜을 미리 세팅해 둬야 했다.
저녁 8시 반이면 집에서 피자랑 간식 싸 와서 테이블에 펼쳐 놓고 파티하는 어머님들이 있었다. 정작 커피는 안 시킬 때도 있었다. 담배 물고 앞문으로 들어와 뒷문으로 빠지는, 카페를 지름길로 쓰는 아저씨는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도 당당하게 전담이라고 하더라.
진동벨 없이 이름으로 부르는 매장이라 웃긴 일도 많았다. 본인 이름을 작게 말해놓고 못 들었다고 화내는 손님, 남의 음료를 자기 거라며 들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한번은 라떼를 만들어 놨는데 십 분째 아무도 안 찾아가서 이름을 세 번 불렀더니, 이어폰 끼고 창가에 앉아 있던 분이 뒤늦게 뛰어와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하루를 채운다.
제일 기억나는 건 어떤 애가 매장 생수통에 오줌을 받아 놓고 간 일이다. 그걸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날은 진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이런 날이 열흘에 하루쯤이라, 나머지 아홉 날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반대로 단골 덕에 버틴 날도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는 회사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컨디션 안 좋아 보인다며 사탕을 하나 놓고 갔다. 별거 아닌데 그날 종일 기분이 좋았다. 손님이 진상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도 섞여 있어서 카운터에 서 있을 만했다.

창고 정리랑 마감, 아무도 안 하려는 일
일주일에 한두 번 창고 정리를 했다. 원두랑 시럽, 컵 재고를 맞춰 놓는 건데, 이거 하나만 제대로 해도 사장 눈에는 에이스로 보인다. 같이 일하던 여자애들이 이걸 잘 안 하려고 해서, 나는 그냥 조용히 해 뒀다. 재고가 정리돼 있으면 바쁠 때 손이 훨씬 빨라지니 결국 내가 편했다.
마감도 은근히 손이 간다. 제빙기 물 채워 놓고 다음 날 얼음 양 맞춰 두는 걸 빼먹으면 사고가 난다. 실제로 내가 한번 제빙기 확인을 안 하고 퇴근한 적이 있는데, 다음 날 얼음이 부족해서 영업에 지장이 생겼다며 손실 비용을 청구당했다. 5만 원 아래라 일단 물어주긴 했는데, 그날 이후로 마감 체크리스트를 손에 달고 살았다.
머신 청소도 매일 했다. 스팀 노즐 안 닦으면 다음 날 우유가 눌어붙어서 냄새가 난다. 포터필터 찌꺼기 털고 그룹헤드 물 내리는 것까지 하면 마감에만 삼사십 분이 걸렸다. 손님 앞에서 여유롭게 라떼 뽑는 그 그림 뒤에는 이런 뒷일이 매일 쌓여 있었다.
PC방 알바가 카운터 뒤에서 주문 받고 청소하는 것과 카페는 겹치는 구석이 많다. 손님 앞에서는 여유로워 보여야 하고, 뒤에서는 재고랑 위생이랑 마감까지 챙겨야 한다. 편해 보이는 알바일수록 뒤에서 조용히 하는 일이 많은 법이다.
돈 문제는 끝까지 챙겨야 한다
가장 크게 배운 건 돈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안 챙겨준다는 거다. 나는 4대 보험 없이 계약했다. 주말 16시간씩 꾸준히 나갔으니 주휴수당은 받았는데, 그만두고 퇴직금을 물어보니 사장이 말을 바꿨다.
4대 보험 없이 하기로 하지 않았냐, 퇴직금은 이미 합의된 내용이니 못 준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퇴직금은 4대 보험 가입 여부랑 상관이 없다. 주 15시간 넘게 1년 이상 일했으면 받을 수 있는 돈이다. 4대 보험이 필요한 건 실업급여 쪽이지 퇴직금이 아니다. 이걸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알바가 많다.
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니 바로 해결됐다. 사장은 끝까지 안 주려고 버텼는데, 감독관이 지급 의무가 있다고 강하게 나가니까 그제야 입금하더라. 알바몬에 검색해 보니 그 매장은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다 못 해 먹겠다고 그만뒀다.
돌아보면 사장은 독한 사람이었다. 직원은 갈리는데 저렇게 해야 돈을 버는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래도 나는 일한 만큼은 다 받고 나왔다. 그때 노동청 한 번 다녀온 게 이후에 다른 알바 계약할 때 큰 자신감이 됐다.

카페 알바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정리하면 카페 알바는 음료 마음껏 마시는 낙이 있고, 물류센터나 공장처럼 몸이 부서지진 않는다. 대신 매장 상황에 따라 1인 풀타임이 되면 앉을 틈도 없고, 멀티가 안 되면 버티기 힘들다. 손님은 어디든 별의별 사람이 다 온다.
계약할 때 근무 시간이랑 주휴, 퇴직금 조건은 문자로라도 남겨 두자. 나처럼 나중에 노동청까지 가지 말고 처음에 못 박아 두는 게 편하다. 마감 체크리스트는 꼭 만들어서 손에 달고 다니고. 발 편한 신발도 하나 챙기면 종아리가 덜 뭉친다.
나는 지금은 카페를 그만뒀지만, 누가 첫 알바로 뭐가 낫냐고 물으면 카페를 먼저 말한다. 진상한테 데는 날도 있지만, 내가 만든 연유 카푸치노 한 잔 들고 마감 끝난 빈 매장에 서 있으면 그날 하루가 그래도 괜찮게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