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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근무 후기

공장 생산직 첫 한 달 후기, 주야 2교대 제조 라인 들어가서 버틴 솔직한 기록

책상 앞에서 몇 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공장 생산직으로 출근하게 됐다. 책으로 보던 세상과 라인 위에서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첫 한 달을 어떻게 버텼는지, 몸이 어떻게 망가지고 또 어떻게 적응했는지, 통장에 얼마가 찍혔는지 숨김없이 적어둔다.

나는 원래 손이 빠른 사람도 아니고 체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주야 2교대 제조 라인에 들어가서 한 달을 채웠다는 게 지금도 스스로 신기하다. 한 달 전의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못 믿었을 것이다.

책상 인생 접고 공장 생산직 면접 보러 간 날

오래 앉아서 뭔가를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더 끌고 가도 점수가 오르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서면서 정리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던 시점이라 당장 돈이 되는 일을 찾아야 했다.

구인 사이트에서 집에서 버스로 사십 분 거리 산업단지의 제조업체 한 곳을 찾았다. 주야 2교대, 식사 제공, 기숙사 가능, 잔업 많음. 시급은 최저보다 조금 높았고 야간과 잔업 수당을 더하면 손에 쥐는 게 꽤 된다는 글들이 보였다.

면접은 오 분 만에 끝났다. 자격증이나 학점을 묻지 않았다. 야간 근무 가능한지, 무거운 거 들 수 있는지, 언제부터 나올 수 있는지 그 세 가지만 물었다. 다 된다고 했더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면접관은 라인 반장이라고 했다. 사무실 책상보다 작업복 입은 사람이 직접 나와 사람을 뽑는 구조였다. 그 자리에서 작업복 사이즈를 재고, 사물함 번호를 받았다. 채용이라는 절차가 이렇게 간단할 수 있다는 게 그 시절의 나에겐 충격에 가까웠다.

산업단지 정문과 출퇴근 셔틀버스 풍경
산업단지 정문과 출퇴근 셔틀버스 풍경

공부할 때는 서류 한 장 통과하는 데 몇 주가 걸렸는데, 현장은 사람이 부족해서 그런지 들어가는 문이 너무 쉽게 열렸다. 그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사람이 자꾸 나가는 자리인지 그제야 의심이 들었다.

첫 출근 전날 밤은 묘하게 긴장됐다. 시험을 앞둔 밤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었다. 시험은 머릿속이 무거웠는데, 이번엔 내일 몸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그동안 운동이라곤 거의 안 하고 책상에만 붙어 있던 사람이라 더 그랬다.

안전화를 미리 사두라는 말을 듣고 작업화 한 켤레를 샀다. 발끝에 쇠가 들어간 신발은 처음 신어봤는데 묵직했다. 그 신발을 현관에 놓고 보니, 진짜 다른 세계로 출근하는구나 싶었다. 책 대신 안전화를 챙기는 아침이 시작된 거였다.

제조 라인 공정과 내가 맡은 단순 반복 작업

내가 들어간 곳은 자동차 부품 쪽 협력업체였다. 사출로 뽑아낸 플라스틱 부품을 검사하고, 조립하고, 포장해서 다음 라인으로 넘기는 구조였다. 큰 기계가 부품을 토해내면 사람이 받아서 다듬고 끼우는 일이 끝없이 이어졌다.

내 자리는 라인 중간이었다. 컨베이어가 돌아가면 약 7초에 한 번씩 부품이 내 앞으로 왔다. 그걸 집어서 버(가장자리에 남은 거스러미)를 칼로 따고, 두 부품을 딱 맞춰 결합하고, 불량인지 눈으로 보고, 통에 던지는 동작을 반복했다.

하나에 7초. 한 시간이면 오백 번 넘게 같은 손동작을 한다. 하루 여덟 시간 잔업 두 시간이면 같은 동작을 오천 번 가까이 반복한다. 글로 쓰면 별것 아닌데 손목과 어깨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사흘째부터 알게 됐다.

  • 전 공정: 사출기에서 부품 성형, 자동 배출
  • 내 공정: 버 제거, 부품 결합, 외관 검사, 분류
  • 후 공정: 수량 카운트, 박스 포장, 라벨 부착, 적재

속도가 정해져 있다는 게 가장 낯설었다. 내가 빠르면 앞에 부품이 쌓이고, 느리면 컨베이어 끝에서 떨어진다. 라인은 가장 느린 사람 속도에 맞춰지지 않는다. 정해진 속도에 사람이 맞춰야 했다.

첫날은 손이 따라가질 못했다. 부품 하나 처리하는 사이에 다음 부품이 벌써 와 있고, 그 다음 것까지 밀려왔다. 옆 사람이 내 자리까지 손을 뻗어 두세 개를 대신 처리해줬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버를 따는 칼도 처음엔 무서웠다. 부품 가장자리를 따라 칼을 그어야 하는데, 힘을 잘못 주면 칼이 미끄러진다. 첫날 왼손 검지를 살짝 그었다. 깊진 않았지만 그 뒤로는 칼 쥔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가서 손목이 더 빨리 지쳤다.

점심시간은 사십 분이었다. 구내식당 밥은 생각보다 푸짐했고, 무엇보다 종일 서 있다가 앉는 그 사십 분이 천국 같았다. 밥보다 의자가 고마운 날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밥을 빨리 먹고 남는 시간엔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후가 되면 같은 동작인데도 정확도가 떨어졌다. 불량을 한두 개 놓쳤고, 후 공정에서 그게 걸려 돌아왔다. 라인장이 와서 다시 보라고 했다. 단순 작업이라고 얕봤다가, 단순 작업을 정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렵다는 걸 첫날부터 배웠다.

일주일쯤 지나니 손이 동작을 외우기 시작했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칼을 긋고 부품을 끼웠다. 그제야 라인 속도를 겨우 따라잡았다. 신기하게도 손이 일을 외우니 머릿속이 한가해져서, 오히려 잡생각이 더 많이 났다.

그 한가한 머릿속이 야간엔 독이 됐다. 새벽에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은 순간도 있었고, 반대로 그냥 손에 집중하면서 마음이 비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단순 반복은 그렇게 양날이었다.

주간 야간 번갈아 도는 2교대, 몸이 적응하는 과정

우리 라인은 일주일 단위로 주야가 바뀌었다. 한 주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다음 주는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 잔업이 붙으면 끝나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첫 주는 주간이라 그래도 사람이 하는 시간대였다. 문제는 둘째 주 야간이었다. 밤을 새워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리듬은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게 완전히 달랐다.

야간 첫날, 새벽 3시쯤 되니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컨베이어는 멈추지 않는데 손이 한 박자씩 늦어졌다. 라인장이 와서 어깨를 툭 치며 세수하고 오라고 했다. 화장실 거울 속 내 얼굴이 회색이었다.

새벽 시간대 환하게 켜진 작업장 천장 조명
새벽 시간대 환하게 켜진 작업장 천장 조명

낮에 자는 것도 일이었다. 암막 커튼을 쳐도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낮의 생활 소음 때문에 두세 시간마다 깼다. 일주일 만에 주간으로 돌아오면 이번엔 밤에 잠이 안 왔다. 몸이 어느 리듬에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야간 중간에 주는 야식 시간이 있었다. 새벽 1시쯤 컵라면이나 김밥을 먹는데, 그 짧은 휴식이 없으면 후반부를 못 버틴다. 라인 사람들도 야식 시간만큼은 표정이 풀렸다. 다들 비슷하게 졸리고 비슷하게 지쳐 있으니 그 시간에 묘한 동지애 같은 게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침 7시였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걸으며 셔틀에서 내릴 때의 그 기분은 설명하기 어렵다. 세상은 하루를 시작하는데 나는 하루를 끝내고 있었다. 커튼을 치고 누우면 거실에선 옆집 청소기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사람 몸이 신기한 게, 2주차 끝 무렵부터는 야간에 새벽 3시 고비를 조금씩 넘기게 됐다. 밥 먹는 시간을 일부러 새벽으로 옮기고, 쉬는 시간에 무조건 5분이라도 눈을 붙이는 요령이 생기면서였다.

야간에 적응하는 나만의 방법도 몇 가지 생겼다. 적어두면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 야간 주에는 낮에 무조건 암막 커튼 치고 안대까지 쓰기
  • 새벽 3시 고비 직전에 미리 찬물 세수하고 스트레칭
  • 퇴근 후 바로 자지 말고 가벼운 샤워로 몸 식히고 눕기
  • 카페인은 야식 시간 전까지만, 새벽 4시 이후엔 안 마시기

그래도 주야가 일주일마다 바뀌는 리듬은 끝까지 완전히 익숙해지진 않았다. 한 달 내내 시차 적응을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한 주 적응할 만하면 다시 뒤집히니, 몸이 어느 한쪽에 정착할 틈이 없었다.

현장 사람들과 신입한테 흐르는 묘한 텃세

라인에는 십 년 넘게 일한 분들이 있었다. 손이 기계처럼 정확했고, 부품을 보지도 않고 불량을 골라냈다. 그분들 옆에 서면 내 손은 정말 굼떴다.

처음 며칠은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신입이 며칠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버틸 사람인지 아닌지 먼저 지켜본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한 달 못 채우고 나가는 사람한테 굳이 정을 줄 이유가 없는 거였다.

텃세라고 하면 거창한데, 실제로는 작은 데서 드러났다. 좋은 도구는 오래된 사람이 먼저 가져갔고, 편한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한 번은 알려주지만 두 번 물으면 표정이 변했다. 눈치로 익혀야 했다.

전환점은 야간 둘째 주였다. 내 옆자리 반장님이 라면 하나를 끓여서 나눠줬다. 며칠 안 나가고 붙어 있는 걸 보더니 그때부터 말이 트였다. 칼로 버를 따는 각도, 손목 덜 쓰는 자세 같은 걸 그제야 알려줬다. 그 작은 요령 하나로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 모르는 건 눈치껏 보고 익히기, 같은 질문 두 번 안 하기
  • 먼저 인사하고 먼저 청소 도구 챙기기
  • 쉬는 시간에 휴대폰만 보지 말고 한두 마디라도 섞기

한 번은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라인을 잠깐 세운 적이 있었다. 부품 통을 엎어서 정리하느라 흐름이 끊겼다. 그때 누가 화를 내거나 핀잔을 줄 줄 알았는데, 반장님이 와서 같이 주워 담아줬다. 초반에 느꼈던 텃세는 사실 무관심에 가까웠고, 그 무관심은 한 달을 채우면서 천천히 걷혔다.

나이도 출신도 제각각이었다. 갓 스무 살 넘은 친구도 있었고, 정년을 앞둔 분도 있었다. 책상 앞에서만 살던 나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같은 라인에 서본 적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 듣는 인생 이야기들이 어떤 책보다 진했다. 다들 한 가지씩 사연을 안고 이 라인에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현장은 학벌이나 말솜씨로 인정받는 곳이 아니었다. 꾸준히 나오고, 라인 안 멈추고, 불량 안 내는 사람이 인정받았다. 그 기준이 차라리 단순하고 정직했다. 누가 며칠 안 나오면 그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메워야 하니, 꾸준함 하나가 곧 신뢰였다.

잔업 특근 다 채운 첫 달 실수령액과 몸 상태

한 달을 채우고 받은 명세서를 보면서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다. 기본급 자체는 높지 않았다. 그런데 야간 수당과 잔업, 주말 특근이 더해지니 액수가 꽤 올라왔다.

  • 기본급(주간 기준) — 전체의 절반 남짓
  • 야간 가산 수당 — 야간 주에 시급 1.5배 적용분
  • 연장 잔업 수당 — 하루 평균 1~2시간치
  • 주말 특근 — 한 달 두세 번 휴일 가산

공제를 다 떼고 손에 들어온 첫 달 실수령액은 내가 책상 앞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것보다 많았다. 다만 그 액수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야간을 절반 채우고 잔업과 특근을 거의 다 잡아야 나오는 숫자였다.

현장 사람들이 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는지 한 달 만에 이해했다. 기본급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니, 결국 몸을 더 갈아 넣어서 수당을 채우는 구조였다. 누구는 한 달에 특근을 한 번도 안 빼고 다 잡았다. 그 사람의 손은 늘 어딘가 부어 있었다.

돈을 더 벌려면 야간과 잔업을 더 채워야 하고, 그러면 몸이 더 상한다. 이 단순한 교환 관계가 현장의 핵심이라는 걸 명세서를 보면서 분명히 알게 됐다. 시급 표에 적힌 숫자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과 체력을 정직하게 맞바꾼 결과였다.

한 달 동안 내 몸은 분명히 망가졌다.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려서 파스를 붙이고 잤고, 발바닥은 종일 서 있어서 저녁이면 부었다. 칼에 손가락을 두 번 베였고, 부품 모서리에 살이 까지는 건 거의 매일이었다.

작업 장갑과 손목 보호대, 파스가 놓인 책상
작업 장갑과 손목 보호대, 파스가 놓인 책상

특히 야간 주에는 손목 상태가 더 나빴다. 졸음을 참느라 손에 힘이 더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았다. 둘째 주 끝 무렵엔 약국에서 손목 보호대를 사서 작업 내내 차고 있었다. 그걸 차고 나서야 시큰거림이 좀 줄었다.

안전 교육은 첫날 한 시간 받았다. 보호 장갑, 안전화, 회전부 주의, 비상 정지 버튼 위치 정도. 라인이 빨리 돌 때는 그 교육 내용을 떠올릴 틈도 없었다. 다친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잠깐 방심한 순간이었다.

반장님이 해준 말이 기억에 박혔다. 다치는 건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익숙해졌을 때라고 했다. 신입 때는 다 무서워서 조심하는데, 손에 익으면 방심이 생긴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더 천천히 손을 움직이려 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오래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던 시절에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흐릿했는데, 라인에서는 내가 만진 부품 개수가 그대로 숫자로 찍혔다. 일한 만큼 통장에 들어온다는 단순한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다잡아줬다.

한 달 버티고 나서 솔직하게 드는 생각

공장 생산직이 쉬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이제는 그냥 웃는다. 단순 반복이라 머리는 안 쓰지만, 그 단순함을 여덟 시간 열 시간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일을 속으로 가볍게 봤었다. 직접 라인에 서보니 보기엔 하찮아 보이던 일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십 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라인을 지켜온 분들이 오히려 대단해 보였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한 만큼이 눈에 보인다. 박스가 쌓이고, 라인이 돌고, 한 달 끝에 명세서가 나온다. 막연히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던 그 긴 시간보다, 몸은 더 힘든데 마음은 차라리 가벼운 날이 많았다.

이 일을 평생 하겠다는 결심까지는 아직 못 했다. 손목과 수면 리듬을 생각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다만 한 달은 채웠고, 다음 달도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야간 둘째 주의 그 라면 한 그릇 같은 순간이 한 번씩 있으니까.

한 가지 덧붙이면, 면접 때 들었던 좋은 조건들은 대부분 야간과 잔업을 다 채웠을 때의 이야기였다. 기본급만 보고 들어오면 실망하기 쉽고, 수당까지 다 잡으면 몸이 먼저 비명을 지른다. 그 균형점을 각자 찾아야 한다는 게 한 달 동안 배운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혹시 책상 인생을 정리하고 현장으로 갈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급 표만 보지 말고 야간과 잔업을 몸이 받아낼 수 있는지부터 솔직하게 따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돈은 분명히 들어온다. 대신 몸이 먼저 그 값을 치른다. 나는 그걸 한 달 만에 손목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