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를 3곳 넘게 거치면서 야간도 해보고 주말 풀타임도 해봤지만, 일 자체가 힘들어서 그만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작 나를 지치게 한 건 진열도 시재도 아니라 사람, 그것도 점장 한 명이었다. 주안동 근처의 한 GS25에서 거의 1년 가까이 버티다 나오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편의점 알바의 난이도는 점포가 아니라 점장이 결정한다.
이 글은 임금체불이나 노동청 진정 같은 법적 절차 이야기가 아니다. 돈은 늦긴 해도 결국 받았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건 매일 출근 전마다 명치가 묵직해지던 그 감정노동,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말바꾸기, 그만둘 때 모든 책임을 떠넘기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알바생이 있다면,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부터 하고 싶어서 적는다.

아쉬울 땐 굽신, 거절하면 180도 돌변하는 사람
가장 먼저 적응이 안 됐던 건 태도의 낙차였다. 본인이 급할 때는 정말 사람을 녹일 듯이 부탁한다. 혹시 그때 한두 시간만 나와줄 수 있냐고, 부탁 좀 하자고, 거의 사정하듯 연락이 온다.
문제는 내가 사정이 있어서 못 한다고 할 때다. 그 순간 목소리가 바뀐다. 안 될 거면 미리 말하지 왜 1~2시간 지나서 말하냐고, 어이없다고, 됐다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분명히 부탁을 받은 쪽은 난데, 거절하고 나면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사람이 된다.
이게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부탁과 비난이 같은 입에서 30분 간격으로 나오는 걸 반복해서 겪으면 사람이 멍해진다. 나중에는 본인 연락이 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휴대폰 진동만 울려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거절할 정당한 사정이 있어도 미안해지는 상태, 그게 가스라이팅의 시작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특히 기억나는 날이 있다. 하루 쉬는 날이었는데 오전 11시쯤 전화가 왔다. 오후 타임에 펑크가 났으니 3시간만 나와줄 수 있냐고, 정말 미안한데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내가 선약이 있어서 어렵다고 하자, 통화 끝나기 직전 목소리가 식더니 그럼 됐다는 한마디로 끊었다. 그날 저녁 출근한 다른 알바한테 전해 들으니, 내가 책임감이 없다는 식으로 험담을 했더라. 나는 그저 쉬는 날 잡힌 약속을 지켰을 뿐인데, 거절 한 번이 사람을 매도하는 명분이 됐다.
시킨 적 없는 일로 가스라이팅하는 기술
두 번째는 업무 지시 방식이었다. 이 사람은 일을 말로만 한다. 직접 보여주거나 기준을 정해주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분리수거를 하라고 하면, 어디에 어떻게 버리라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그냥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분류해서 처리해두면 그날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 며칠 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표정이 바뀐다. 왜 이걸 이렇게 해놨냐고, 이렇게 하라고 말한 적 없는데 왜 마음대로 했냐고, 저번에 분명히 다른 방법으로 하라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몰아붙인다. 처음 들었던 지시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그제서야 꺼내며 내가 처음부터 틀렸던 것처럼 만든다.
- 지시는 모호하게, 책임 추궁은 구체적으로 한다
- 처음 한 말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나중에 말을 바꾼다
- 결과가 좋으면 침묵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새로운 기준을 들이민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까 나중에는 내 기억을 내가 의심하게 됐다. 분명히 저렇게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가 일을 못하는 건가. 멀쩡히 일 잘하던 사람이 자기 판단을 못 믿게 되는 게 가스라이팅의 진짜 무서운 부분이다.
발주도 비슷했다. 어떤 상품을 얼마나 시켜야 하는지 기준을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으면서, 막상 재고가 모자라면 왜 이걸 안 시켰냐고 했다. 반대로 넉넉히 발주해두면 왜 이렇게 많이 시켜서 자리를 차지하게 했냐고 했다. 적게 시켜도 틀리고 많이 시켜도 틀리는, 애초에 정답이 없는 시험을 매번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늘 틀린 사람이 되는 구조였다.
최저시급 받으면서 중소기업급 업무량을 떠안는 구조
세 번째는 업무량이다. 고작 알바를 2~3일 정도 쓰면서, 다루는 강도는 어지간한 중소기업 직원 부리듯 했다. 7~8시간 근무로 계약했는데 실제로는 쉬는 시간 1~2시간을 겨우 빼고 5~6시간을 강제로 풀로 뛰어야 했다.
내 근무 시간에 들어오는 물류가 다른 점포보다 2~3배는 많았다. 그걸 쉬지 않고 풀로 정리해야 겨우 끝나는 수준인데, 거기에 전 근무자가 남긴 짬까지 다 떠안았다. 다음 근무자가 튀김기 세팅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준비까지 내 몫이 됐다.
구체적으로 하루를 풀어보면 이렇다. 8시간 근무에 휴게 시간은 1시간으로 잡혀 있지만, 그 1시간을 온전히 쉰 날은 손에 꼽았다. 물류가 들어오면 손님을 받으면서 동시에 검수하고 진열했고, 그 사이사이에 점장이 카톡으로 던지는 잡일까지 끼어들었다. 앞 타임이 미뤄둔 폐기 정리, 냉장고 청소, 매대 교체가 전부 내 시간으로 흘러왔다. 결국 8시간 중 6시간 가까이는 한 자리에 서 있을 틈도 없이 움직여야 했다. 같은 시급을 받는 다른 점포 친구는 야간에 책을 읽을 시간도 있다는데, 나는 주간인데도 화장실 갈 타이밍을 재야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노가다를 나가서 일당을 받지, 최저시급 받으면서 온갖 짬처리를 다 당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시급은 그해 최저시급인 만 원 남짓이었다. 주휴수당이나 야간수당을 떠나서, 시간당 받는 돈은 똑같은데 일의 밀도만 다른 데보다 3배쯤 됐다. 그런데도 점장은 늘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한다고 했다. 내가 살면서 거쳐온 다른 3~4곳에서는 단 한 번도 이렇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이게 표준인 것처럼 말했다.
남들도 다 한다는 말은 가스라이팅의 단골 문장이었다. 그러다 내가 한마디라도 힘들다고 하면 곧바로 말을 뒤집었다. 남들은 1달도 못 가서 다 그만뒀고, 나니까 그래도 이만큼 봐준 거라고 했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면서 동시에 남들은 다 도망간 일이라고 하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 모순을 짚을 기운조차 없을 만큼 사람이 지쳐 있었다는 게 더 문제였다. 몸이 고된 건 퇴근하면 풀리는데, 이런 말들은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 다음 출근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만둘 때가 되니 모든 책임을 떠넘기더라
가장 사람을 질리게 한 건 마지막이었다. 그만두겠다고 하자 태도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이제는 붙잡을 수 없으니 아쉬울 게 없다는 식이었고, 그동안의 모든 문제를 떠나는 사람에게 몰아주려 했다.
나는 시재를 꽤 정확하게 맞추는 편이었다. 마감 때 현금 시재나 담배 수량에서 문제가 난 적이 거의 없었고, 스스로 봐도 99% 확률로 사고 안 나게 관리한 직원이었다. 그런데도 전 근무자가 마이너스 낸 담배 재고, 어딘가 안 보이게 박아둔 물건까지 마치 내가 부실하게 일한 증거인 것처럼 끌어왔다.
한 번 더 찾아보면 나올 물건을 두고, 여태 얼마나 일을 안일하게 했는지 안 봐도 안다고 했다. 1~2달 깔짝 일한 사람도 아니고 거의 1년을 남들보다 빡세게 채운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었다. 잘한 건 당연한 거고, 남이 만든 문제까지 떠나는 사람 탓으로 정리하는 게 이 사람의 마무리 방식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마무리는 계산된 것에 가까웠다. 떠나는 직원은 더 잘 보일 이유가 없으니 아무 말이나 막 던져도 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는 사람을 깎아내려야, 본인이 운영을 못해서 사람이 나가는 게 아니라 직원이 부족해서 나가는 거라는 이야기가 성립한다. 나를 부실한 직원으로 만들어두면, 다음 사람에게도 전 알바가 일을 못해서 내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서사의 한 챕터로 소비되는 중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화보다는 차라리 헛웃음이 났다.

버티는 동안 내가 한 건 기록뿐이었다
이런 점장 밑에서 내가 미치지 않고 버틴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그냥 기록을 남겼다. 말이 자꾸 바뀌는 사람과 일할 때, 내 기억보다 강한 건 날짜와 시간이 박힌 기록뿐이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 출근 첫날 받은 근로계약서를 사진으로 찍어 따로 보관했다. 시급, 근무 시간, 휴게 시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나중에 말바꾸기를 막아줬다
- 지시는 가능하면 메신저로 받았다. 구두로 시키면 다시 한번 메시지로 확인 부탁드린다고 보냈고, 그 답장이 곧 증거가 됐다
- 분리수거나 마감 방법처럼 말이 바뀔 만한 업무는 처리한 직후 사진을 찍어뒀다
- 부당한 지시나 폭언이 반복될 때는 메모 앱에 날짜와 내용을 짧게 적어뒀다
녹음 이야기를 덧붙이면, 내가 대화에 직접 참여한 통화나 면담은 따로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본인이 녹음할 수 있다. 나는 그만두기 직전 면담은 혹시 몰라 녹음을 켜뒀다. 결과적으로 쓸 일은 없었지만, 그 파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면담 내내 덜 흔들렸다. 기록은 싸우려고 모으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의심하지 않으려고 모으는 것에 더 가까웠다.
이 습관의 진짜 효과는 마음에서 나타났다. 점장이 또 말을 바꾸며 몰아붙일 때, 예전 같으면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위축됐을 텐데, 휴대폰을 열어 그날 주고받은 메시지를 다시 보면 내 기억이 맞았다는 게 확인됐다. 그 한 번의 확인이 무너지려던 자존감을 붙잡아줬다. 6개월쯤 지나면서부터는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속으로 흔들리지 않게 됐다. 나는 기록이 있고, 너는 말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알바생이 점장과 기억력으로 다투면 거의 진다. 하지만 글자로 남은 기록 앞에서는 누구의 직급도 의미가 없다.
그만둘 때의 마음가짐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건 죄책감을 내려놓은 일이다. 처음엔 내가 빠지면 점포가 돌아가나 싶어 미안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사람들이 1달도 못 버티고 줄줄이 그만두는 이유를 단 한 번도 자기에게서 찾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든 게 직원 탓이었다.
그래서 정한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 통보는 정해진 기간을 지켜서 정상적으로 한다. 무단결근이나 잠수는 결국 나에게 흠이 되니까 안 한다. 둘째, 그 외의 감정적인 부분은 단 하나도 떠안지 않는다. 후임 교육이며 인수인계는 할 수 있는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하되, 너 때문에 점포가 힘들어졌다는 식의 말은 한 귀로 흘렸다.
마지막 근무일에 나는 평소처럼 시재를 맞추고, 마감을 정리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건 점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과 보낸 시간을 내 흠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오는 길에 명치를 누르던 그 묵직함이 사라진 게, 마지막 월급보다 더 시원했다.
한 가지 더 정해둔 게 있다면, 그만두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일이었다. 예전엔 그만둘 때 솔직하게 무엇이 힘들었는지 말해야 점주도 고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을 겪어보니 이 사람은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피드백을 주면 그건 또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드는 재료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다는 한 문장만 남겼다.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같은 상황의 알바생에게 현실적으로 하고 싶은 말
편의점 알바 자체는 죄가 없다. 같은 GS25라도 점장이 멀쩡하면 6개월이고 1년이고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문제는 점주 운이고, 그 운이 나쁠 때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적인 기록, 하나는 죄책감을 분리하는 태도.
- 근로계약서는 첫날 무조건 받아서 사진으로 남겨라. 안 주는 곳은 그 자체가 신호다
- 지시는 되도록 글자로 남는 형태로 받아라. 말로만 시키는 사람일수록 나중에 말을 바꾼다
- 일을 못해서 욕먹는 것과 사람이 이상해서 시달리는 건 전혀 다르다. 다른 곳 3~4군데에서 멀쩡히 일했다면, 문제는 높은 확률로 내가 아니다
- 그만둘 땐 절차만 정상적으로 지키고, 감정적 책임 추궁은 받아 적지 마라
내가 1년 가까이 버틴 게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나왔어도 됐다. 다만 그 시간이 완전히 손해는 아니었던 게,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고 기록하는 습관이 남았다. 지금도 어디서 일을 시작하면 첫날 계약서부터 챙긴다. 누군가 비슷한 점장 밑에서 출근 전마다 속이 묵직하다면, 그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이상한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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